문: 안녕하십니까? 일단 시간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답: 오랜 시간을 낼 수 없으니 빨리 진행해 주세요.
문: 아.. 네 알겠습니다. 바쁘신 가 보군요. 그럼 요즘 근황부터...?
답: 바쁜 것이 아니라 그이를 기억하고 또 되새겨야 한다는 것이 저에겐 부담입니다. 한때나마 사랑했던 사람이고 아이들의 아빠입니다. 비록 이렇게 결말지어졌다고 해서 지난 날은 모두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문: 이렇게 결말지어졌다는 것은 완전히 헤어졌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까?
답: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친정인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저는 선녀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인간세상에서 살게 된 후로 연로하신 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나빠지셨기 때문에 지금은 제가 간호해드리고 있습니다.
문: 그렇군요. 동화에 선녀님의 친정에 관한 건 자세히 나오지 않아서 미처 부모님이 계실 거라는 걸 생각지 못했습니다.
답: 사람들은 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죠.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문: 그런 것 같군요. 그럼 본격적인 질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사실 제가 이렇게 인터뷰를 시작하게 된 건 선녀님의 마음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두분은 결혼을 하셨고 아이도 낳았으며 비교적 무난하게 가정생활을 하신 것처럼 보였는데요?
답: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외부자의 시선과 내부자의 시선은 다른 겁니다.
문: 불행하셨단 뜻인가요?
답: 아닙니다. 제 말은... 그러니까... 솔직히 지난 세월은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군요. 처음에 날개옷을 잃어버리고 아는 사람이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정말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나무꾼님이 나타나 잘 곳을 마련해주고, 옷도 주고.... 정말 은인이 따로 없었죠. 그래서 저도 보답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어머님을 도와 집안일을 거들었습니다.
문: 그런 고마운 마음이 사랑이 된 건가요?
답: ......... 그 땐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 지금은요?
답: 모르겠습니다. 하긴... 그 때의 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나무꾼님이 싫었는데 억지로 결혼한 건 아니었습니다. 제가 처한 상황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제 감정은 정확하지 않았지만 나무꾼님의 마음만은 진심이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문: 어쨌거나 그 때는 사랑이라고 믿었다면 끝까지 사랑으로 원만한 가정생활을 유지할 수도 있었을텐데요? 하지만 하늘나라로 돌아가고 싶어하셨죠?
답: 네... 그이는 자상한 사람이었고 어머님도 좋으신 분이었지만 저는 이상하게도 자꾸 외로웠습니다. 인생에서 사랑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부모님도 보고 싶고, 친구들도 보고 싶고....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인간세상에 정붙이고 잘 살아보자고 다잡아보았지만 힘들었습니다.
문: 결국 선녀님의 한숨과 눈물을 본 나무꾼님은 숨겨두었던 날개옷을 꺼내셨는데요. 그 때까지는 정말 꿈에도 생각못하셨나 보죠?
답: 네. 나무꾼님이 날개옷을 꺼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너무 놀라서 기쁨을 느낄 새도 없었어요. 하지만 남편이 이제껏 저를 속여왔다는 걸 알게 된 순간저는 분노에 사로잡혔어요. 나에 대한 사랑만큼은 진심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나 싶어서 엉엉 울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 나무꾼님도 저를 붙잡고 울었던 것 같네요. 하지만 그 때는 나무꾼님이 보이지 않을만큼 화가 나 있었습니다.
문: 그럼 복수하고 싶으셨겠네요? 그래서 떠난 건가요?
답: 아닙니다. 결과적으로는 나무꾼님에게 상처를 주게 되었는지 몰라도, 복수를 위한 이별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관계는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떠난 겁니다. 그전까지는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이지만 이젠 미워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문: 지금도 미워하십니까?
답: 밉습니다.굉장히 미운데... 미워할수록 제 맘이 더 아픕니다.
문: 그렇다면 용서하시면 되잖아요?
답: 용서라.... 글쎄요... 처음엔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용서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언젠가는 그이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부 용서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문:선녀님이 떠나신 후 나무꾼님이 두레박을 타고 하늘나라로 찾아가신 적이 있잖아요? 그 때는 어땠습니까?
답: 네. 그 때 뭣 모르는 아이들은 동화가 해피엔딩이 될 것 같다고 좋아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경험이 짧은 아이들의 생각이지요. 마지막장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책을 읽은 것이 아니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보지 못한 사람은 그 영화를 본게 아니잖아요.
문: 나무꾼님을 사랑하셨다면서요? 선녀님이 좀 참으시면 아이들이 원하던 해피엔딩도 가능했을 것 같은데...
답: 과연 누구한테 해피엔딩이라는 거죠? 저도 엄연히 동화의 주인공인데 제가 희생해야 한다면 그게 과연 해피엔딩인가요? 저한테 미안하다고 쩔쩔매는 나무꾼님을 보면서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그래도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마지막엔 날개옷을 돌려줬겠지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의 끝엔 비겁하고 이기적인 남편에 대한 실망감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 때 제가 할 수 있는 사랑은 나무꾼님과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가까이 있으면 서로 할퀴고 뜯으며 상처를 주게 될 테니까요.
문: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셨는데, 사실 양육권 문제는 나무꾼님과 상의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답: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아버지 보다는 엄마의 손길이 더 필요할 때입니다. 그 때는 독단적으로 결정한 일이었지만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옥황상제님께 상의해서 아버지를 만나게 해줄 생각입니다.
문: 선녀님은 다시 나무꾼님을 만날 생각이 없는 겁니까?
답: 아까 말씀드렸듯 시간이 필요합니다. 앞으로의 일은 함부로 장담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선녀인 제가 인간세상의 나무꾼과 결혼하게 될 줄 몰랐듯, 지금의 저 역시 어떻게 살지 알 수 없겠지요.
문: 마지막 질문입니다. 만약 처음 만났던 날 나무꾼님이 날개옷을 훔치지 않고 그냥 선녀님에게 고백을 했다면 선녀님은 나무꾼과 결혼하셨을까요?
답: 글쎄요...저 역시 그런 생각을 안해본 것은 아닙니다만 그런다고 그 때로 돌아갈 수도 없잖습니까.... 어쨌거나 지금과는 많이 다른 결과일테고 꼭 지금보다 나았을거란 확신도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그 때 만약 그랬다면"이란 전제는 부질없는 것입니다.
문: 저... 사실... 이건 말씀드리지 말라고 하셨지만.... 사실 선녀님과 인터뷰하기 전에 나무꾼님을 만났습니다. 선녀님과 인터뷰할 거라고 혹시 전할 말 없느냐고 했더니....
답: 아뇨. 말하지 마세요. 듣고 싶지 않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이의 안부가 궁금하고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아직 그이를 다 용서한 게 아니에요. 그이를 용서하는데 어쩌면 평생이 걸릴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렇게 천천히라도 그사람을 용서하고 있으니까.... 우리 사이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거겠죠?
문: 듣고 보니, 우리가 읽은 동화는 아직 엔딩이 쓰여지지 않은 미완성이었군요. 오늘 어려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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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끝난 후, 그녀는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나에게 뭔가 말하려는 것 같았다.
아니면 반대로 나에게 뭔가를 듣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먼저 말해주거나 물어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사람들은 일부로 자기 스스로를 학대할 때가 있다.
그런 사람이 어딨냐고 하겠지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그런 미련한 짓을 하곤 한다.
무언가를 잊기 위해 다른 것을 미친듯이 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해 나를 아프게 하기도 하고
다음날 속쓰릴 걸 알면서술을 마시고,담배갑의 경고문을 읽으면서 담배를 피우고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며 처달리기도 하고, 몇날 몇일 아무것도 안먹기도 하고...
사랑을 할 때도 그렇다.
서로에게 벌을 주기 위해 안만나고, 미워하고, 모진 말을 내뱉고...
그러면 결국 자기 마음도 갈기갈기 찢어지면서....
선녀와 나무꾼도 관계의 믿음이 깨진 것에 대한 벌을 서로에게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사랑한다는 이유로 또한 감당하고 있었다.
처음에 "선녀는 왜 나무꾼을 용서하지 못했을까? 그냥 참고 살지" 했었던 마음은 많이 누그러졌다.
사랑의 전제조건이 희생이라면 과연 누가 희생되어야 할까...?
만약 그 희생이 선녀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한, 혹은 강요된 것이어도 아름답고 숭고하다 할 수 있을까?
역시... 쉬운 사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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